강호행차/국내명소

여의도 윤중로 밤 벚꽃

가루라 2016. 4. 10. 23:07

오래전

여의도 윤중로 벚꽃을 보러가다

마포대교 위 차안에서 5시간을 묶여 있었던 후로

많은 인파와 자동차에 치받히는 여의도 벚꽃 나들이를

두번 다시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방법

여의도에 숙소를 잡고 벚꽃축제를 즐기는 방법이 있었네요.

금요일 퇴근해서 딸이 잡아놓은 콘래드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유있게 밤 벚꽃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호텔에서 보이는 하늘은

뿌연 박무에 한강 건너도 제대로 분간이 안됩니다.

고담시처럼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드는 여의도공원과 공원 건너편 건물들.

박무와 미세 먼지에 휩싸인 도심

공원 연못에 잠긴 IFC 등 건물들 

 여의대로에서

조금은 늦은 밤임에도 윤중로에는 밤 벚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벚꽃을 비추는 다양한 조명 빛으로 인해

때로는 차가운 느낌으로, 때로는 열정적인 붉은 빛으로 바뀌지만

하얀 조명의 벚꽃 

녹색 조명의 벚꽃 

그래도 팝콘처럼 하얗게 보이는 밤 벚꽃이 제격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저 즐거움에 팡 터지는

연인들의 모습이지 말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늦은 밤 꽃놀이를 즐기는 이들을 더욱 낭만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예술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길거리 버스킹일 것입니다.

네 곡을 다 듣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기타 연주자의 버스킹

처음 보았지만 딸은 홍대 거리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네요.

집시, 스페니쉬스타일, 플라맹고가 생각나는 밤.

아주 길 바닥에 앉아 턱 고이고 듣게 만듭니다.

기타 연주 버스킹 

기타연주에 빠져드는 사람들 

시간은 점점 자정을 향해 가는데도

사람들의 긴 그림자는 여전히 윤중로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도발적인 홍매화를 연상시키는 조명으로

셀카질을 멈출 수가 없게 만듭니다.

한강 고수부지로 나가는 교각 위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얽히고 설킨 정국처럼 뿌옇습니다.

강건너로 보이는 도심이

박무에 의한 난반사로 붉게 보여도

연인들의 눈에는 타오르는 정염의 불꽃으로 보이나 봅니다.

바람 한 올 들어갈 틈 없이 붙어 서서 셀카에 빠집니다.

도발적인 불빛에 덮힌 분홍색 벚꽃들은

유난히 연인들의 발걸음을 지체하게 만드나 봅니다.

붉은 조명의 벚꽃

붉은 조명의 벚꽃 길

파스텔로 그린 것처럼 몽환적인 국회의사당과

하얀 민초 같은 벚나무

수와진의 공연을 보고

스캣엔저스(Scatengers)와 피고뮤직(Pigomusic)의 합동 재즈공연에 빠져도 봐도

발바닥이 아프도록 걸어서 힘든 다리가

돌아가는 길을 걱정할 무렵

윤중로의 가로등도 하나둘씩 꺼집니다.

하얀 조명 아래 화사하게 핀 벚나무 밑에 두고 온 미련을

내일 새벽 몽환적인 강변의 안개 속에 다시 찾아가리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립니다. 

마포대교 인접도로에는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워놓은 자동차들이 즐비합니다.

여전히 대낮처럼 밝히고 있는 노점상 LED 램프들

나도 한 때 밤을 잊은 젊음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번거롭게 집에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밤

내일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벚꽃 길을 꿈꾸며 숙소로 향합니다.

<Scatengers와 Pigomusic의 버스킹>


'강호행차 > 국내명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브나라농원에서의 하룻밤  (0) 2016.10.12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0) 2016.08.16
독립문  (0) 2016.03.31
창덕궁 전각  (0) 2016.03.12
힐리언스 선마을의 새벽에  (0) 201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