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世上山行

북한산 형제봉

가루라 2016. 5. 29. 23:19

다시 찾은 북한산 형제봉

한 사오년 되었을까요?

창밖으로 계속 보고 있는 탓에

오히려 더 자주 찾지 않았던가 싶게 뜸했었습니다.

아니, 쉬고 있을 때는

일주일이면 두어차례 혼자서 찾곤하던 북한산이었었는데

요즈음은 주말마다 무슨 일이 꼭 있거나

친구들 집안의 혼사가 있거나 해서

혼자서 산을 오를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고교 동창산우회장을 맞고부터는

혼자 산을 찾기가 더욱 더 힘들어졌지요.

저의 산행습관은 산행이 아니라 거의 산보 수준입니다.

할망이 심한 편이지요.

등산로 주변의 바위를 요모 저모 뜯어보고

주변에 자라는 풀, 나무, 곤충, 새소리

심지어 바람소리조차도 제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낮은 산도 헤집듯이 훑고 다니느라

거의 종일을 걸리곤 합니다.

때로는 땅바닥에 바짝 붙은 풀 꽃을 마주하여 씨름하고

때로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이름모를 새소리에 귀를 열고...

과거 저의 산행은

짧은 발걸음에도

그래서 많은 사진을 남기곤 했습니다.

마치 한번 보고 말 것 처럼 샅샅히 훑는 그런 버릇은

친구들과 산악회 일을 맞고나서

더욱 저를 힘들게 했나봅니다.

이름모를 풀꽃을 발견하면 걸음을 지체하고는

이내 보조를 맞추느라 뛰다시피 올라가고.

또 때로는 친구들 사진을 담아주느라 앞서거니 뒷서거니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그래서 오늘처럼 혼자서 호젓하게 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혼자서는 자유로운 것을...

그것은 산을 찾는 이유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산우회는 늘 전투적인 산행을 하게됩니다.

등정 목표와 하산 시각을 정해 놓고

죽을듯이 올라갔다가

금방 하산에서 술방에 죽치는 그런 산행.

북한산 형제봉처럼 낮은 산은

비교적 그런 산행팀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한 둘이서

그저 조금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듯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느리게 걷는 산행을 즐깁니다.

낮은 산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철책에 의지하지 않으면

오르내리기가 힘든 산

세상살이가 그렇듯

아무리 낮은 산이어도 산은 산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인생이어도

높낮이의 차이가 있을 뿐 부침은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의 정점에 올라섰을 때

희열을 느끼고

굴곡점의 밑바닥에 이르렀을 때

비통함과 좌절을 느낍니다.

인간은 애시당초 그런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신에게 닥쳐오는 그런 감정의 변화를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변곡점의 밑바닥에 있을지라도

등산처럼 정상이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

확신으로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혼자서 산을 찾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런 이론을 검증하러 오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위험한 정상에 섰을지라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추락의 위험이 없는 산행.

그것인 인생과 등산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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