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담양 용흥사의 가을

가루라 2016. 11. 28. 01:11

늘 무겁고 조급한 마음으로 갔다가 도망치듯 올 수 밖에 없었던 담양행

마음의 여유가 없는 담양행은 여행이 아니라 마음 속에 새겨진 빚인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약속된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동생네 내외와 자투리시간을 이용 가까이 있는 용흥사를 찾았습니다.

수차례 오고 가며 지나쳤던 용흥사의 표지판

알고 보니 용흥사가 있는 용흥사계곡은 담양10경 중 제8경으로 꼽을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용흥사 전경>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몽성산(夢聖山) 아래 있는 용흥사는

조계종 백양사의 말사로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고찰입니다.

창건 이후의 기록이 소실되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초기에는 용구산 용구사(龍龜寺)로 불리우다가

조선 숙종조에 숙빈 최씨가 이 곳에서 기도 후 영조를 낳았다 하여

절 이름을 용흥사(龍興寺)로, 산 이름은 몽성산(夢聖山)으로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하네요.

<용흥사 경내 단풍>

용흥사 일주문으로부터 사천왕문과의 거리 그리고 대웅전까지의 거리는 꽤 멀어보입니다.

한 때 산내 암자가 7개나 될 정도로 흥성했었지만

19세기말 의병의 근거지로 쓰다가 불에 타버린 것을 중건한 후

6.26동란에 또다시 화마의 피해를 입었다네요.

그 후 중건과 불사를 계속하여 그나마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고 합니다.

법당의 단청도 최근에 완료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불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넓은 절터로 미루어 볼 때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용흥사 일주문>

드라마 동이로 세간에 더 잘알려진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왕을 낳은 후궁들"<최선경저>과 "화경 숙빈 최씨 왕을 훔친 무수리"<이상각저>에는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와 용흥사의 인연을 용흥사 구전설화를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숙빈 최숙원의 본명은 복실로 전북 태인 태생이었으나 전염병을 피하여 담양군 창평으로 왔다가

전염병으로 조실부모하여 천애고아가 되었고

용구사(옛 용흥사)에 와서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더랍니다.

<용흥사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와 사천왕문>

효성이 지극한 복실의 꿈에 현몽한 용구산 산신령의 지시에 따라

장성 길재에 나가 나주목사 민중돈의 부임행차를 만나 살 길을 찾게 되었는데

민중돈의 아내에 의해 양육되다가 한양에 올라 궁궐에 입궐하여 무수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천왕문으로 보이는 용구루(龍龜樓), 반대편은 보제루(普濟樓)>

<사천왕상>

남방 증장천왕과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과 동방 지국천왕

왕실과 연결된 용흥사에 전해지는 설화.

규모있는 오래된 사찰에는 조선의 왕실과 연관된 설화들이 많습니다.

조선 왕조는 표면으로는 숭유억불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기실 왕실은 국란이나 왕가의 길흉화복을 위하여 사찰을 결코 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

작금의 우리나라 정국에 비추어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지 않습니까?

<용흥사 전경>

일주문으로부터 두번째 단으로 조정된 용구루 앞에 서면

정면에 사천왕문 뒤로 장군봉이 눈에 듭니다.

<용구루쪽에서 본 사천왕문>

멀리 있는 병풍산 산자락이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우측 뒤의 718m 용구산이 오른쪽으로 길게 산자락을 펼치고 있어서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세입니다.

지형으로 보면 입구도 좁아서 구한말 의병기지로 쓰기에도 딱 좋은 곳입니다.

<남쪽에서 담은 용흥사 전경> 

입지적인 여건 덕분인지 경내의 분위기나 기운은

더할나위 없이 차분하고 포근해 보입니다.

<입상의 석불과 용구루>

경내의 이 곳 저 곳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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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성선원 선불당(選佛堂)

적묵당(寂默堂)

경내 건물들

남쪽에서 담은 경내 전경입니다.

불당이 빼곡하지 않은 공간이 시원해 보입니다.

남동쪽에서 담은 경내 전경

경내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전통적인 곶감 깎기용 감나무 

대웅전 뒤 남서쪽에서 담은 용흥사 전경

아마도 용흥사 경내 단풍의 압권은 이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막바지에 이른 단풍나무와 노란빛을 잃지 않은 느티나무 단풍이

역광을 받아 제 빛깔을 있는대로 뽐내고 있습니다.

엄숙해야 할 사찰 경내에서 이렇게 뽐내며 원색적으로 불타도 되는 것인지 ! 

적묵당(寂默堂) 툇마루에 소리없이 감을 널어 놓는 스님의 손길에는

소리도 움직임도 없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듯 정지해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사찰 경내의 사진을 보면

시간조차 정지한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대웅전 최측에서 담은 용흥사 경내 전경>

절 마당에 깔아놓은 검은 판석 사이의 짓뭉개진 노란 잔디만이 사람의 흔적을 말해줄 뿐

마치 비어 있는 사찰처럼 적막한 날이었습니다. 

<대웅전 앞에서 담은 용흥사 경내 전경>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만큼 너무나 조용한 산사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묵상에든 선승의 참선을 깨울까 하여

법당 인근에서의 사진 촬영을 최대한 자제하게 되네요.

<대웅전 앞에서>

대웅전 좌측 뒤에 자리한 삼성각

법당을 가리듯 비스듬히 서 있는 붉은 단풍이

삼성각 맛뱃집의 붉은 단청과 어우러져 임시 발판의 위태로움마저 잊게 만듭니다.

<삼성각>

용흥사 경내에 있는 감나무들과 단풍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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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후면 풍경

용흥사의 감나무

용흥사 좌측 통로

용흥사 경내에는 감나무가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띄입니다.

그것도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빨갛게 익은 감만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를 보는 것은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포만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할만큼 보기 좋습니다.

빨강과 노랑 그리고 갈색으로 물든 좌측의 숲과

우측 언덕 경사면의 초록색 풀빛을 가르는 신작로 같은 흙길

이 모든 것이 한 폭에 담겨

마치 19세기 인상파 화가의 유화를 보는듯 아름답습니다.

몇차례 용흥사에 들렀었다는 동생의 설명에 따르면

단풍이 시기적으로 많이 늦어서 지금은 끝물이라는데도 말입니다.

일주문쪽으로 내려가는 길 우측은 온통 단풍나무 숲입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 만날 수 있다면

끝물임에도 단풍의 빛깔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용흥사를 끼고 좌우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은

용흥사계곡으로 흘러내립니다.

일단 월산저수지에 모였다가 다시 용흥사계곡을 이루어 흘러내립니다.

저수지에 모인 물은 다시 제법 깊은 계곡을 이루어 흐르는데

저수지 아래 용흥사계곡에 사설 캠핑장이 들어서서

아쉽게 용흥사계곡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월산저수지>

월산저수지 상류의 계곡물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숲이 온통 수면에 투영될 정도입니다.

<용흥사 계곡에 투영된 숲>

약속된 시간까지 약 30~40분의 여유 밖에 없어서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본 담양 용흥사는 물론

담양 10경중 제 8경으로 꼽는다는 용흥사계곡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둘러보는 곳은 늘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도록 기억되고 또 가보고 싶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단풍이 절정에 달할 즈음에

그리고 시간이 허용된다면 눈이 쌓인 겨울에도 꼭 한번 들러보고 싶은 곳입니다.

담양10경 중 제8경 용흥사계곡과 용흥사.

한번쯤 들러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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