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베트남 다낭여행

다낭 까오다이(Cao Dai)사원

가루라 2018. 12. 18. 01:07

다른 항공편으로 도착한 친구들과 템플 다낭에서 합체

몇년만에 만나는 반가움을 차안에서 나누며

첫번째로 찾은 관광지는 카오다이(Cao Dai :高臺)교사원입니다.

판당비치의 템플다낭에서 서쪽으로 한강을 건너 10여분거리에 있는

베트남 토속종교시설이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아서 약 20분정도면 관람은 끝납니다.

그럼에도 다낭관광여행상품에는 빠지지 않는 곳이네요.

까오다이(Cao Dai)는 한자로는 '高臺(높을 고, 돈대 대)'라고 쓰며

베트남어로 '까오 다이'로 읽습니다.

'대(臺)'를 '다이'로 발음하는 것은 중국식 발음과 같아 보입니다.

까오다이는 한자 표기처럼 '최고의 신' 또는 '최고의 파워'를 뜻한다고 하네요.

정식 명칭은 베트남어로 'Dai dao Tam Ky Pho Do'로

'세번째 우주적 구원을 위한 신념'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3층탑처럼 솟아오른 지붕에는 불교의 '卍'자 표시가 세워져 있어서

사원의 외관은

서장의 라마교 사원 같기도 하고

채색으로 보아 꾸뽈지붕이 없는 이슬람사원 같은 느낌도 듭니다.

건물의 외관에서 볼 수 있듯

까오다이교(Caodaism, 高臺道)는 유교, 불교, 도교를 망라한 베트남 자생종교로

탄생시기나 배경 등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원불교와 일맥 상통한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유불선을 통독하고 기독교까지 섭렵한 소태산 종법사에 의해

1919년 일제 치하에서 탄생된 시점이나

교리적 바탕의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네요.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1921년

코친차이나의 프랑스 지역행정청장이었던 Ngo Van Chieu는

까오다이로부터 계시를 받고

까오다이교의 상징인 신성한 왼쪽눈에 대한 비전을 정립하여 그 이론을 전파하였는 바

그를 따르던 세명의 성도가 창립의 주요한 정신적 바탕이 되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신성한 언약을 1925년 하느님 앞에 선언하면서

종교적 틀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침내 1926년 Le Van Trung을 중심으로 200여명이 까오다이교 설립에 서명하여

정식종교단체로 창립되고 베트남의 민속종교들을 급격하게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종교적 이론을 창시한 고 반 치우는

까오다이교의 설립 최초의 수장으로 지명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이를 거부하고 다른 분파에 합류했나 봅니다.

공식적으로 1926년 설립된 까오다이교는

조상숭배, 비폭력주의, 채식주의, 신과의 합일, 불교의 윤회(samsara)로 부터의 자유 등을 추구하며

궁극적인 목표로 천국과 지구가 하나가 되는

우주적 구원을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신도수가 440만명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지부까지 합치면

600만명에 이르는 종교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월남정권 패망 후 공산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한 때 탄압 받기도 했지만

1977년 이후 정부로 부터 제제를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합니다.

종교적 집회를 갖는 예배당 내부 모습입니다.

예배당 정면에 보이는 둥근 구(球)에 그려진 왼쪽 눈이

강력한 흡인력으로 빨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 조형물은 까오다이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원불교의 일원처럼 교리의 원천이기도 하지요.

신의 왼쪽 눈 즉 천안(天眼)으로

남성성인 양(陽)과 여성성인 음(陰)이 합일된 표징이랍니다.

그 위에 걸려 있는 액자의 그림을 보면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다섯 성자가 그려져 있어서

이들을 두루 통섭한 통합종교임을 알게 합니다.

후면 제단에는 하단의 목숨 수자 원형 디자인에

초서로 쓰인 한자가 중앙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초서는 해독을 못했네요.

뭔가 의미가 있을 텐데

아시는 분께서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배가 없는 날이라 예배당을 지키는 흰색 아오자이를 입은 두 여성만 볼 수 있었습니다.

떠이닌(Tay Ninh)의 본산과 하노이에 있는 사찰에 비해 규모가 작은 탓인지

실내에 방석 수도 많지 않습니다.

바둑판 무늬의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남자는 오른쪽으로

여자는 왼쪽으로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다.

사찰 오른쪽 탑은 남성 교조인 레반쩡(Le Van Trung)

그리고 왼쪽 탑은 여성 추기경인 람후엉(Lam Huong)을 상징하기 때문이랍니다.

입구 중앙에 게양되어 있는 황청적의 삼색 깃발은

노랑색의 불교, 파랑색의 도교, 그리고 빨강색의 유교의 통합을 상징합니다.

15~19세기에 이르러 동북아는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유교문화를 통해

우리나라와 문화적 특성의 연결고리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베트남.

20여년 전 하노이에서 공자를 모신 사당을 보면서 느꼈었지만

근현대에 이르러 외침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환경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양분된 남북 대치상황과 남북전쟁까지

많은 점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역사적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박항서 축구감독으로 인한 베트남의 축구 붐과

요즈음 베트남에서 보여지는 산업발전의 역동성까지.

어쩌면 우리는 베트남 여행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신전 입구에 세워진 한글 안내 표지판

한국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어서 인지 베트남어, 영어,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습니다.

복장 단정, 정숙, 남녀 입장입구 지정, 홀에 놓인 방석을 밟거나 발로 차지 말라는 경고까지

조금은 씁쓸함을 느끼게 만드는 관람주의 문구네요.

일부 틀린 어법과 맞춤법을 교민이 나서서 수정토록 요구해주기를 바래 봅니다.

한글 관람 안내문 

사막의 장미 아데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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