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낙선재(樂善齋)

가루라 2016. 3. 5. 17:52

잔뜩 흐린 어느 겨울날 낙선재에서

조선의 마지막왕 영왕의 비 이방자여사가

1989년까지 왕실의 마지막 인사로 거쳐하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80년대 중후반 계동사옥에 근무할 당시

점심 식사 후에 산책겸해서 율곡로로 나있는 낙선재의 문을 익히 보았지만

30년만에 진면목을 보게 되었네요.

흐린 날씨 탓에 사진발이 아쉽기는 하지만

맑은 날을 다시 기약하게 만드는 멋진 곳입니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 헌종 13년(1847년)에

그리고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는 이듬해에 지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그의 후궁인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의 비)의 거처였습니다.

<낙선재 입구 장락문>

정궁이 아닌 탓에 단청이 없는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말기 조선의 건축물입니다.

왕비가 아닌 후궁을 위해 지어진 집이라

헌종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낙선재>

헌종은 존경하던 대왕대비와 사랑하는 경빈을 위해

각가의 건물 뒤에 아름다운 후원을 꾸몄습니다.

자신이 쓰던 낙선재 뒤에는 육모정인 평원루(平遠樓-지금은 청량당)를

석복헌 뒤 후원에는 한정당(閒靜堂)을

그리고 수강재 뒤에는 취운정(翠雲亭)을 지었습니다.

<낙선재와 후원의 상량정(上凉亭)>

<낙선재 뒤의 상량정>

낙선재 후원 담장과 후원으로 오르는 계단

계단식으로 만든 화단과 세력된 벽돌 굴뚝

그리고 돌받침 위에 놓인 괴석이 아기자기하게 보입니다.

누마루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실내 구조

원형의 장지문이 이채롭습니다.

앞뒤를 완전히 터서 통풍을 확보한 대청마루

어린시절 시골집을 연상하게 하여

왕궁이라는 먼 느낌보다는 오히려 친숙한 느낌을 줍니다.

낙선재 후원과 서쪽 승화루를 연결하는

원형의 만원문(滿月門)도 정겹습니다.

시간관계상 석복헌과 수강재를 다 돌아보지 못하고

돌아나와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날빛 좋은 날을 택해 다시 찾아야할 명분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한

낙선재 일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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