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5

설날의 단상

지금의 민속의 명절로 부르는 설날 이런 밤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집안의 일을 도와주는 일꾼까지 한 집에서 총 13~14명이 살았었다. 설 전날 밤이면 어머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설빔을 풀어놓으셨다. 새 옷이거나 때로는 고무신이거나 내복 등 매년 다른 설빔을 주셨었다. 설날이면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따라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마루에 나가 안방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리고 이어서 어머니, 아버지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을 간단하게 조금씩 먹었다. 겨울용 검은 두루마기에 갓을 쓰신 할아버지 뒤를 따라 눈길을 걸어 큰집(하아버지의 큰 형님댁)에 차례를 지내러 가곤 했다. 큰집에서 떡국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삼촌들과 동생들 함께 동네 일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갔었다. 집성촌이라 세..

좁쌀풀 꽃

멀리서 보면 작고 동그란 꽃보오리가 좁쌀처럼 보인다고 좁쌀풀이다. 지금은 조의 재배농가가 흔치 않지만 60~70년대에는 밭작물로 많이 재배했었다. 조이삭을 수확하여 좁쌀을 만들어 좁쌀밥을 해 먹거나 떡에 넣거나 막걸리를 빚는데 썼다. 제주에서는 좁쌀로 만든 오메기떡, 오메기술이 향토음식이 되었다. 밀주단속이 심하던 60년대에는 설명절에 쓸 막걸리도 몰래 담그셔서 어떻게 밀주를 만드는지 어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무청 속에나 광의 마루 밑 구덩이에 숨겨두었던 술독을 머리에 이고 십리를 내달리던 어머님의 뒷모습을 기억할 뿐. 70년대에 들어서 밀주단속이 풀리고 설에 쓸 막걸리를 빚기 위해 찹쌀과 좁쌀을 섞어 술밥을 지어 뒤꼍(집뒤)에 대나무발을 펴고 술밥을 말리면 고슬고슬한 술밥을 한두 주먹 뭉쳐서..

설날 차례상

#설날차례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전화한 아들에게 엄마랑 둘이 준비하고 지낼 테니 걱정마라 했었다. 그래도 차례상을 차리는 설날 아침 혹시 혼자라도 오나 벨소리에 귀기우려 진다. 이래서 시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글들이 인터넷을 달구나 보다. 벌금을 내줄 테니 오라는 시댁 둘씩 교대로 세배를 오라는 시댁 결국 시댁도 한쪽으로는 친정일 텐데 그러는 친정 얘기는 없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는 차례상 차림도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혼자서 제기를 꺼내고, 병풍을 치고 상 차리는 것까지는 그래도 할 수 있는데 술을 따르고 잔을 올리고 배례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웠으니 나까지는 그래도 어찌하겠지만 한자도 잘 모르는 아들이 지방이며 축문을 쓸 수 있을까? ..

설날

#설날 이런 섣달그믐 밤이 없었다. 날이 새면 까치까치설날인데 설빔은 고사하고 아들 손자조차 함께하지 못하니 이러다가 설날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어린 시절 섣달그믐 밤은 잠 못 이루는 날이었다. 설빔으로 받아 쥔 새 옷, 새 신발 밤새 만지작거리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잠들지만 잠들자마자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눈을 떠야만 했었다. 요즈음 아이들이 설빔이라는 단어를 알까? 달콤한 맛에 몸서리쳐질 설빙은 알아도 설빔의 뜻은 모르겠지. 그렇게 예순일곱의 섣달그믐 밤이 지나간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와 아침 차례상을 마주할 2022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