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국내명소

소록대교, 소록도를 가다.

가루라 2011. 12. 22. 09:17

거금도 가는 길 소록대교를 건너 소록도를 들르다. 

천형을 받은 사람들의 유배지 소록도

예전엔 배를 타지 않고는 드나들 수가 없었습니다.

40년전 녹동항에서 거금도에 들어가는 배를 타고 소록도옆을 지날때

나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록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속에서

숨조차 멈추고 싶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2009년 3월 소록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그 바다의 폭 이상의 넓이만큼

그들은 문명사회로부터 유리되고 멀리해야 할 사람들

아니 인육을 먹어야 낫는 짐승이라했었습니다.

오월 보리이삭이 필 무렵이면

보리밭 고랑사이에서 문둥이가 나온다고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들판에 홀로 나가지 말랬었죠.

문둥이가 호랑이만큼 무서웠던 그 시절

그들은 육지에서 내쳐져 황량한 섬 소록도까지 쫓겨가야 했다네요.

이제는 의술이 발달하여 음성이다 양성이다 구분짓고

이름조차 한센병으로 바뀌고

소록도의 일부가 개방되어

그들도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일부라는 인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니

만시지탄이나 변화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변화의 상징이 육지와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가 아닐까요.

그래서 1,160미터의 현수교 주탑 두개를

두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답니다.

 

차안에서 왕복2차선 교각 진입 입구를 잡아 봅니다.

소록대교를 건너 안전지대에 잠깐 정차

소록대교 전체를 담았습니다.

소록도 내에 들어가서 소록대교를 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다시 한컷

소록도를 방문하는 외지인은 이곳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야 합니다.

외지인에게 개방된 검시실, 감시실을 둘러 보기로 합니다.

1919년 자혜병원이 세워진 이래

내지에서 밀려나 주로 고흥지역에 거주하던 한센인들을 동원하여

1936년 3년이상의 세월을 거쳐 소록도를 건설했답니다.

건설과정에서의 그들의 애환이 알려지게 된 것도 불과 얼마되지 않았을만큼

사회적 관심이 없었던 삶이었었네요. 

송림사이로 잘 만들어진 나뭇길을 따라 걷습니다.

섬 안으로 세차게 부는 한풍에 오가는 사람조차 끊기고

혼자서는 병동건물 앞까지 가기도 그렇고

개방된 검시실, 감금실 등 보면 뭐하냐

싫다며 차안에서 기다리실 모친 생각에 이곳에서 발걸음을 돌립니다.

만 안으로 불어 닦치는 세찬 찬바람에도

포근히 서있는 그들의 안식처가 상징하는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만 입구에는 절대금옥의 관문을 상징하듯 암초 두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님은 자조합니다.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하늘과 땅사이에 태어난 버섯이라고

나보다 더 훨씬 무거웠을 그들의 삶의 무게에

나의 삶을 반추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새삼 학창시절 읽었던

한하운님의 황톳길, 보리피리 등을 꺼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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