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鳥類世上

딱새 구하기

가루라 2014. 2. 28. 00:50

우리집 마당에 불법으로 입주한 서생원을 잡으려고 펼쳐놓은 쥐잡기 끈끈이에

오늘 아침 딱새 암컷 한마리가 날개가 들러붙어

초죽음상태로 발견 되었습니다.

올 겨울 무단으로 침입한 쥐새끼가 석축틈에 구멍을 내고

주인의 허락도 없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퍼낸 토사량이 상당해서

그대로 두면 담장까지 무너질까 염려될 지경이었죠.

급기야 그제 밤 근처 약국에서 쥐잡기 끈끈이를 사다가

잡곡과 땅콩, 육포조각 등을 미끼로 얹어 쥐구멍 앞에 놓았습니다.

 

혹시 낮에 마당에 찾아온 새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첫날 아침 일찍 끈끈이를 거두었던 집사람이

둘째날은 깜박했었나 봅니다.

 

마당에 나가 보니 약아빠진 쥐새끼는 쥐새끼처럼 빠져나가 버리고

잡곡 한톨에 눈이 어두워 찾아온 애먼 딱새 한마리가

한쪽 날개와 다리가 끈끈이에 붙은 채 꼼짝을 못하고 있네요.

혹시 날개라도 다칠까 조심 조심 손으로 붙잡아

끈끈이에 붙은 날개와 다리를 간신히 떼어냈습니다.

 

숨 넘어갈듯 빨딱거리는 새가슴만 손바닥에 가득할 뿐

이 아이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정신이 아득합니다.

깜박잊고 끈끈이를 치우지 못했던 집사람은

더 미안해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릅니다.

손에 묻은 끈끈이를 석유를 묻혀 제거하라 끈끈이 포장지에 쓰여 있지만

우리집에는 석유제품을 쓰는 것도 없을 뿐더러

석유 냄새조차 맡은 지 오래 되었으니

당장 어디서 석유를 구할 수조차 없습니다.

주유소에 가서 딱새를 구하려 한다고 한컵만 달라고 사정할 수도

그렇다고 몇 리터를 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인터넷을 찾아봅니다.

역시 인터넷은 살림의 지혜뿐만 아니라

딱새를 구할 수 있는 정보까지도 가득한 보물창고네요.

포장지 지시대로 했더라면 석유냄새를 맡은 딱새가 질식할 수도 있었는데

식용유와 주방세제로 안전하게 딱새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우선 놀란 딱새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검은 헝겁으로 눈을 가리고

식용유를 손에 듬뿍 묻혀 끈끈이로 범벅된 다리와 날개 깃털 한개 한개에 고루 발라주고 난 후

주방세제를 듬뿍 발라 깃털 안에까지 배이도록 촘촘히 묻혀주고는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기를 두세차례하고 나니

끈적이던 것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조심스럽게 손안에 말아쥐고

헤어드라이어로 멀리서 따뜻한 바람을 불어 물기를 말려줍니다.

딱새 암컷 

살아난 딱새 

물에 빠진 생쥐꼴로 젖어 눈을 뒤집으며 곧 죽을 것 같은 딱새.

덮어준 보자기 속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은 듯 있더니

마침내 날개짓을 시작합니다.

보온을 위해 넣어 두었던 종이상자 속에서 튀어 나와

물뿌리게 손잡이 위에 날렵하게 날아 앉아 저와 눈을 맞춥니다. 

가만히 말아 쥔 손바닥에 전해지는 작고 빠른 진동

새가슴을 뛰게하는 심장소리입니다.

다행히 이젠 살았나 봅니다. 

날개와 가슴털, 다리에 붙은 끈끈이가 모두 제거되었으니

이젠 밖에 내어 놓아도 어디에 달라 붙지는 않겠다 싶어서

마당으로 들고 나옵니다.

손바닥위에 올려 놓고 인증샷을 날리는 순간

푸드득 날아가버립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래도 저와 시선을 맞춘 딱새의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는 감사의 마음으로 다가 옵니다.

인간세상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도

간 큰 도둑은 요리조리 빠져나가 큰 탈없이 잘 사는데

야생의 세계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간 큰 쥐새끼는 덫을 빠져나가고

새가슴을 가진 애먼 딱새만 큰 욕을 봤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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