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행차/베트남 다낭여행

다낭 영응사(Linh Ung Bai But Pagoda) 해수관음상

가루라 2018. 12. 24. 04:25

다음 행선지는 다낭 링응바이붓(Linh Ung Bai But Pagoda, 靈應寺)입니다.

미케비치 해안에서 북동쪽

다낭 시내에서 약 9km 정도 떨어진 선짜(Son Tra)반도의 중심을 이루는

해발 693m의 선짜(Monkey)산 산자락에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석상이 바다를 굽어보고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해수관음상을 모신 그리 오래지 않은 사찰, 우리말로 영응사입니다. 

<영응사 전경>

19세기 응우웬왕조 민망왕 시절 선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부처상이 떠내려와 모래언덕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길조라는 믿음으로 거기에 제단을 쌓고 부처를 모셨습니다.

그 때부터 어부들은 평온한 바다에서 안정적으로 고기잡이를 하게 되었고

부처상이 떠내려왔던 모래언덕을

'부처가 지상에 재림한 땅' 이라는 의미로 Bai But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졌습니다.

<Thap Xa Loi(탑사르이) : 부처님의 유물탑>

1975년 베트남 남북전쟁에서 응우엔 반 티우정부의 월남이 패망한 후

월남 정부의 고위인사나 군인, 미군에 협조적이었던 월남인들 중

주로 중국계 베트남인들이 작은 배를 타고 다낭이나 후에 등지에서 베트남 탈출을 감행했던 사건이

그 유명한 보트피플입니다.

정원 초과나 낡고 허름한 배로 인해 또는 해적이나 이웃나라들의 외면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해상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해외 정착에 성공한 베트남인들이 약 80만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해외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당시에 희생된 베트남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희생자가 많았던 이 곳 다낭 Bai But(부처가 지상에 재림한 땅)에 절을 짓기로 했지요.

<영응사 입구의 다층문과 해수관음상>

그런 의도로 2004년 6월 19일 첫삽을 뜬 불사는

6년의 건축기간을 거쳐 2010년 7월 30일 불자의 도량 영응사로 공식 출범하게 됩니다.

Linh Ung Bai But Pagoda는 21세기 베트남 불교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불사로 간주되며

극락과 대지의 신성한 공기와 중생의 불심이 만나는 장소로

다낭시에서 규모나 건축면에 있어서 가장 큰 절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오늘날 불자들의 도량으로서 뿐만 아니라

손짜반도의 복합관광단지로서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다낭의 명소가 되고 있지요.

<경내의 반얀트리분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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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갈고무나무 분재

벵갈고무나무 분재

벵갈고무나무 분재

영응사는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결합된 현대적 스타일의 건축으로 지어졌지요.

저의 눈에는 중국식 사찰 건축형식이 많이 가미된 것으로 보입니다.

용모양의 지붕, 세련되게 조각된 용이 휘감고 있는 단단한 기둥으로 지어진 법당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가장 엄숙하고 순수한 대웅전 내부는

많은 사람들이 좌선을 할 수 있을만큼 넓은 편이며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이 그리고 좌측에는 대장경이 모셔져 있고

날카롭지만 부드럽고 섬세하게 조각된 사천왕상과 18나한상이

대웅전을 수호하기 위해 배열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사찰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영응사의 독특한 특징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경내의 반얀트리 분재들>

영응사의 석상들은 탄호아에서 실어온 흰색 단일 석재를 이용하여

농눅 예술촌장인 응우엔 빗 밍(Nguyen Viet Minh)이 조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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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응사 대웅전

영응사 대웅전

영응사 대웅전

경내에는 수십년, 수백년된 반얀트리(Banyan tree :벵갈고무나무)분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층문 모양의 정문은 대승불교를 취한 중국불교의 영향으로 보이지만

반얀트리 분재는 아마도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반얀트리에 대한 신성화가

남방불교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무소 옆에 세워진 해태상

우리나라의 해태상보다는 등과 머리의 웨이브가 더 깊고 굵은 모양입니다.

영응사의 Land Mark적 건축물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순백의 거대한 해수관음상(Lady Budda)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도 해수관음상을 모신 관음성지들이 있지요.

그중 가장 크다는 양양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이 고작 16m 높이에 불과하지만

영응사에 세워진 해수관음상은 지상 30층 빌딩에 버금가는

무려 67m 높이에 기단의 연화대 둘레만도 35m나 됩니다.

내경은 17m로 17층에 21위의 작은 부처상을 모셔 두고 있습니다.

해수관음상의 수인은 전법륜인(轉法輪印)에 왼손에는 감로수병을 들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해수관음상과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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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 뒷면

해수관음상 측면

해수관음상 정면

해수관음상 전면에는 길흉화복과 재물에 관여하는 미륵보살인 포대화상을 배치해두어서 

현세적 염원에 치중하는 관음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듯해 보입니다.

법당 안의 포대화상의 배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쓰다듬어서 눈부신 광택이 날 정도랍니다.

향을 들고 구원의 기도를 하는 현지인들 옆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이것이 영응사의 기능적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장면이 아닐까요?

대웅전에 비해 심플해 보이는 법당입니다.

이 곳에는 전형적인 모양의 남방불교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설명해 줄 가이드가 없어서

대웅전과의 차이점은 아쉼게도 알지 못했네요.

해수관음상 앞에서 미케비치쪽을 바라봅니다.

석양에 마주하는 미케비치의 낙조가 정말 멋있을 것 같습니다.

저녁시간에 맞추기 위해 짧은 시간에 대충 훑어보고 되돌아 나옵니다.

주차장쪽으로 나서는 길에 보이는 다층 6각탑.

서장 라마교의 다층탑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7층 6각형의 Tahap Xa Loi(사르이탑)는 부처님의 유물을 모신 탑이랍니다.

탑사르이는 밖에서 보면 지붕이 9층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7층 6각탑이랍니다.

7층은 칠정(七情)인 희노우구애오욕(喜, 努, 憂, 懼, 愛, 憎, 欲)을

6층은 불교인식론의 하나인 육근(六根 : 色, 聲, 香, 味, 觸, 法)을 의미한다네요.

다낭 시내로 돌아 오는 길에 보이는 만따이어촌(Man Thai Fishing Village)의 작은 배들.

부처님이 지상에 재림한 땅 바이붓의 보살핌으로 풍어를 이루고 있겠지만

저 작은 배들로 다낭을 탈출하려다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은 수 많은 보트피플의 애환은

영응사가 영원히 안고 가야 할 비극적 역사겠지요.

Man Thai Fishing Village 어선들

미케비치 건너로 보이는 영응사

<무엉탄호텔에서 담은 다낭시내와 미케비치, 영응사쪽 전경>

<300mm 망원으로 담은 영응사 전경>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지배와 영향을 받았고

대승불교문화권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소승불교인 남방불교 문화권인 베트남이지만

문화적 역사적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낭 도착 첫날 불과 몇 시간의 관광으로도 금방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첫날 저녁식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베트남식 퓨전식당에서

수끼로 해결합니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라이스페이퍼쌈을 종종 먹곤 했지만

한국에서 뜨거운 물에 담궜다가 먹는 것과는 조금은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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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수끼

월남쌈

가격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시각은 그리 늦지 않았지만

아침 이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세시반에 인천공항으로 가려다 보니

밤새 잠을 자지 못했던 피로가 확 몰려드는 다낭의 첫날밤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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